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 (문단 편집) == TNO 세계의 역사 == 본 내용은 [[https://www.reddit.com/r/TNOmod/comments/7ll37n/development_update_i_fate_of_nations/|2018년경 게시된 개발일지]]와 다른 개발일지들을 참고했다. 개발일지 사이 사이에 설정 변경이 있었는지 연도가 각각 다 다른데, 이 경우에는 가장 나중에 나온 개발일지를 참고했다. 읽다 보면, 연합국 역량을 감소시키고 추축국의 역량을 증대시킨 요소들이 보이는데, 이의 원인은 개발일지에서 볼 수 있는 [[https://www.reddit.com/r/TNOmod/comments/7c7cie/dev_diary_ii_the_matter_of_britain/|"추축국이 2차 대전에서 이기게 할 현실적인 방법도, 지중해에 댐을 만들게 할 현실적인 방법도, 영국을 침공하게 할 현실적인 방법도, 그걸 다 했다고 해도 5년 넘게 살아남게 만들 현실적인 방법도 못 찾았다"]]와 같은 발언에서 추측할 수 있다. 유능한 추축국 묘사를 최소화하고 현실처럼 '무능하고 체제도 부실한 추축국'들이 승전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 현실과 TNO의 분기점은 [[니콜라이 부하린]]이 스탈린을 꺾고 레닌의 후계자가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소련]]은 [[니콜라이 부하린]][* 참고로 부하린은 게임 본편 시점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kaiserreich&no=31228|#]]]이 경쟁자인 [[이오시프 스탈린]][* 구 로어에서는 '의문스러운 사고'를 맞았지만 설정 변경으로 그냥 권력 투쟁에서 밀린 것으로 바뀌었다.], 지노비에프, 트로츠키를 밀어내고 레닌의 후계자가 되었다. 부하린은 [[신경제정책|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개혁]]을 벌였으나 처절하게 실패해 소련 경제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투하쳅스키 이벤트를 보면 농업과 경공업까진 괜찮게 발전했으나, 중공업부터는 내부 이권다툼이 심각해져 망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가 망했으니 산업화를 할 수도, 군대를 현대화시키거나 확충할 수도 없었다. 현실의 소련은 스탈린의 [[대숙청]]으로 절대권력을 세웠지만, 부하린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미하일 투하쳅스키]], [[알렉산드르 예고로프]]같은 초대 5원수를 비롯, OTL에서는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인사들은 살아남았으나 소련의 군과 정치 체계 모두 엉망이 되었고 소련 내의 정파 갈등은 극도로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이 때문에 [[나치 독일]]은 [[독소 불가침조약]] 없이도 손 쉽게 [[폴란드 제2공화국|폴란드]]와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를 짓밟을 수 있었다. 또한 그 과정에서 고립된 벨기에에 갇힌 영국군, 프랑스군, 벨기에군을 히틀러가 직접 명령하여 구데리안의 기갑 부대가 갈아버리며 [[됭케르크 철수작전|다이나모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로 당선되긴 했지만 뉴딜 정책은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 결과 공화당이 의석 수를 크게 늘리고 민주당에서는 [[남부 민주당원]]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뉴딜은 더 탄력을 잃었다. 이렇게 인기가 떨어진 루스벨트는 8년의 임기는 잘 마쳤지만 3선 도전까지는 무리수라고 생각해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고 대신 자신의 측근 해리 홉킨스를 내보냈다. 박빙의 선거 끝에 공화당 내 온건파 [[토마스 듀이]]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듀이는 상처받은 미국을 치료할 수 없었고 몇몇 부분은 더욱 악화시켰다. 그렇게 미국은 독일이 유럽을 정복하고 [[영국]]이 유럽 민주주의의 마지막 등불이 된 상황에서 영국군과 함께 독일과 이탈리아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영국군은 걸레짝이 된 육군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항전하였고 미군과 함께 [[횃불 작전]]을 성공시켰으며, [[마켓 가든 작전]]을 개시, 걸레짝이 되어버린 군대를 가지고도 독일군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는 것엔 성공했다. 그러나 대영제국의 상징과도 같았던 [[영국 해군]]은 독일 공수부대와 이탈리아 해병대가 스페인의 묵인 하에 [[지브롤터]]를 점령해 지중해에 갇혀버렸으며, 끝내 그 어떠한 군사적 보호를 받지 못한 영국 본토 브리튼 섬은 무방비 상태에 빠지고, 이후 1945년 3월, [[바다사자 작전]]이 벌어지며 본토를 빈집털이당한 대영제국과 연합군은 [[북아일랜드]]에 고립당한다. 브리튼 섬에서의 대패로 인해 유럽 지역을 향한 발판을 잃어버렸고, 그렇게 혼란에 빠진 틈을 타 독일과 이탈리아 추축군은 아프리카를 수복, 끝내 서부전선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승리로 돌아갔고 영국은 독일과의 굴욕적인 '런던 조약'을 체결, 독일의 '보호' 아래에 '자유 국가'로 남게 된다.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이 벌어졌다. [[모스크바 전투]]는 독일의 압승으로 끝났고 소련의 명령 체계는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이에 [[소련군]]은 혼란에 빠졌고 수 갈래로 찢어진 다음, 그대로 [[A-A선]]과 [[우랄 산맥]] 근방까지 밀려나버린다. 쿠데타가 벌어져 부하린이 축출된 후 실종되었고, [[알렉산드르 예고로프]]가 정권을 잡았다. 아르한겔스크를 수도로 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이 쿠데타는 소련을 내전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레닌]]의 사망 18주년인 1942년 1월 21일, 그렇게 소련은 지도에서 사라지고 아르한겔스크의 신소련 정부는 혼란에 빠졌다. 같은 해 12월 7일, [[일본 제국|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벌이며 미국은 대비하지 않았던 전쟁에 끌려 들어간다. 일본은 모든 것들을 걸고 미국과 전쟁을 준비했지만, 미국은 경제난에 허덕이는 시민들을 먹여살리는 것도 힘들었다. 그 상황에서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엔터프라이즈]]와 다른 한 척의 항공모함이 [[진주만]]에서 가라앉았고 진주만의 유류저장고 역시 파괴되었다. 미 해군은 [[연합함대]]가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리하고 태평양을 휩쓰는 모습을 손가락을 빨며 바라본다. [[몰락 작전]]은 일본 본토 침공 작전이 아닌 [[호주]] 방어 작전이 된다. 1944년 전쟁 중이라는 명분과 민주당의 [[헨리 A. 월리스]]가 진보당을 창당하며 분열된 어부지리 덕에 재선된 듀이 대통령은 미군이 언젠가는 [[독일 국회의사당|라이히스탁]]과 [[고쿄|황거]]에 들이닥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믿는 사람은 적었다. 하지만 독일을 상대로는 패배했어도, 일본을 상대로는 승산이 있었다. 초반에 크게 밀려나긴 했었지만 미국은 막강한 산업력을 기반으로 일본을 압도해갔다. [[츠지 마사노부]]가 [[임팔 작전]]을 성공시키며 [[중화민국/국민정부|중화민국]]을 지원할 수 없게 되었지만, 미국은 현실 태평양 전쟁에서 하였던 도약 작전을 통해 빼앗겼던 태평양 섬들을 차례로 수복, 일본군을 이오지마까지 밀어냈다. 마침내 미 해병대는 이오지마에 상륙했는데, 지원하러 온 미 함대가 일본 함대와의 함대결전 중 유인전술에 걸려 대패하였으며 상륙한 해병대는 대량으로 항복하는 참사가 발생한다. 이렇게 미국의 공세가 둔화되었다. 다만 일본 해군 역시 큰 피해를 입은데다 [[맨해튼 계획]] 역시 결실을 맺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맨해튼 계획은 대공황이 극복되지 못 한 상황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가중된 경제 손실로 인해 지지부진했고, 결국 독일이 핵개발 경쟁에서 앞지르고 만다. 1945년 7월 4일, 맨해튼 계획이 결실을 맺기 하루 전, 일본 항공모함에서 이륙한 독일 폭격기가 진주만에 핵폭탄을 투하한다. 진주만에 또 가해진 핵폭격은 하와이의 해군기지로써의 가치를 상실시켰고[* 윌리엄 홀시, 체스터 니미츠도 핵폭탄 폭발 여파로 인해 전사하였다.], 5만여명이란 거대한 피해는 이미 가난에 시달리던 미국 시민들의 전의를 완전히 꺾어버린다. [[독립기념일]]에 벌어진 이 참사에 미국인들은 전의를 잃었다. 다음날 듀이는 뉴멕시코로 부터 맨해튼 계획의 완성을 보고 받지만 너무 늦은 결실이었다. 결국 듀이는 [[아카기(항공모함)|아카기]] 갑판 위에서 굴욕적인 종전 조약에 서명했다. 아카기 조약이라고 불리는 이 조약에 따라 미국은 [[하와이]]와 [[알류샨 열도]]를 포함한 태평양 속령들을 양도했다. 미국은 독일과 일본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했으며, 석유 금수조치 역시 해제해야 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연합국은 [[중화민국/국민정부|중화민국]]이었다. 그러나 중화민국에 지원을 보내줄 국가들은 대부분 독일과 일본에 이미 패배했고, 위기를 극복하고 재정비된 일본군의 공세를 막을만한 여력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제스]]는 끝까지 항복을 거부했고 일본군은 [[셔먼의 바다로의 행진]]이 [[신멸작전|우습게 보일 정도의 초토화 작전]]을 펼치며 [[충칭시]]로 향했다. [[마오쩌둥]]과 [[장제스]]는 충칭에서 연합해 최후의 저항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1947년, 한때 충칭이었던 잔해 더미가 함락되자 일본군은 [[백제성]] 폐허 위에서 "아시아와 [[우리 시대의 평화]]"를 선언했다. 이렇게 [[제2차 세계 대전]]은 [[추축국]]의 승리로 끝났다. 전후 [[대독일국]]은 승리를 거머쥐고 야심차게 [[세계수도 게르마니아|게르마니아]] 건설 계획, 콩고 인공 호수 등 거대한 토목 공사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과 비대해진 [[독일 국방군]]과 SS 친위대 조직, 그리고 전시경제와 약탈을 기반으로 한 비효율적인 경제 체계, 과격한 핵 보유 경쟁의 여파로 인해 독일 경제는 1950년대부터 몰락하기 시작했다. 외교 역시 파멸적이었다. 나치의 인종차별과 서로 간의 먼 거리는 일본이 추축국에서 탈퇴하도록 만들었다. 일본은 아시아주의와 반서방주의를 명목으로 대전기동안 점령한 식민지들을 그러모아 대동아공영권을 창설했다. 유럽 동맹국들에 대한 안하무인적인 외교와 전리품의 분배 문제, 북아프리카 문제, 스위스 침공 시도로 이탈리아도 등을 돌렸다. 독일과 국경이 맞닿은 이탈리아는 비슷하게 독일의 패권주의적 외교 정책으로 상당히 피해를 입은 이베리아, 튀르키예를 끌어들여 반독일 상호 방위조약인 트라움비라투스를 창설했다. 독일은 괴뢰국들과 남아있는 동맹들만 가지고 아인하이츠팍트를 창설했지만 독일이 가라앉는 배라는 것을 깨달은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의 동맹 내 다른 국가들도 조금씩 독일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 사이 우랄 산맥 너머로 밀려난 새 소련의 정부와 그 잔해는 어느 정도 세력정리가 이루어진다. 옛 소련군을 주축으로 한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2.1|서러시아 혁명전선]], 수정주의자 스탈린이 세운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4.1|서시베리아 인민공화국]], 서구식 민주주의 체제의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5.3|중앙시베리아 공화국]], 극동으로 탈출한 볼셰비키 당 조직이 세운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6.1|극동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네 덩어리로 갈렸다. 서러혁전의 대원수 클레멘트 보로실로프는 독일이 휘청이는 것을 보고 공격의 적기라고 판단했고 모스크바를 재탈환하기 위해 '[[수보로프]] 작전'을 개시, '''서러시아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초기에는 서러혁전이 밀고나가 일부 영토를 수복했지만, 이후 블라소프가 이끄는 러시아 해방군, 아리아 형제단 등 부역자와 배반자들이 독일에 가세하며 소모전에 들어간다. 서러혁전의 미하일 투하쳅스키는 더 밀어붙이면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무리한 공세를 이어가지만 정치인들은 이를 반대했다. 결국 투하쳅스키의 독단에 질린 보즈네센스키, 수슬로프, 즈다노프 등의 정치인들은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2.5|식팁카르]]에서 쿠데타를 감행했고 명령 계통의 혼선으로 부역자들에게 전선이 돌파당하자 서러혁전은 붕괴, 아르한겔스크 주변에 고립되었다. 그러나 부역자들도 독일에는 희망이 없다 생각했는지 독일과의 연계를 끊고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2.2|뱟캬]]의 [[로마노프 왕조]] 복고주의자, 한번 더 배신을 택한 블라소프를 따르는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2.3|사마라]]의 [[러시아 해방군]],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2.4|고리키]]의 탈주한 서러혁전 기갑 부대 군벌,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2.6|페름]]을 점거한 아리아인 형제단 등으로 떨어져 나가며 서러시아는 처참하게 분열되고 말았다. 한편 소련 붕괴 후 스탈린이 자리를 잡고 세운 서시베리아 인민공화국은 서러시아 전쟁을 지원하고 어떻게든 재기하려하였으나, 이미 독소전쟁에서 패배한 소련은 그의 손을 거치고도 되살아날 수 없었고, 끝내 1955년 스탈린이 사망하자 그 사이를 틈타 로코솝스키, 카르비셰프가 쿠데타를 벌임으로 인해 숨통이 끊어지고만다. 스탈린 사후 권력 경쟁에서 승리한 카가노비치의 스탈린주의 문민 정부는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4.1|튜멘]]에, [[콘스탄틴 로코솝스키]]의 군사 정부는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4.2|스베르들롭스크]]에 각각 터를 잡았다. 또한 대조국 전쟁 당시 포로가 되었으나 서러시아 전쟁 중 탈옥해 러시아 방면으로 도망친 노장, 디미트리 카르비셰프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긁어모아서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4.4|옴스크]]에 자리를 틀었다. 계속되는 패배와 온갖 시련들로 악이 오를대로 오른 옴스크의 군인들은 카르비셰프 장군의 '대시련'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에 대한 복수를 부르짖는다. 이 상황에서도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4.7|자유 비행단이라 불리는 소련 공군 잔당]]이 [[제46근위야간폭격비행연대|제588비행연대]]의 지휘관 베르샨스카야의 지휘를 따라 독일의 폭격기들을 요격하며 서시베리아의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우랄 산맥 너머에서는 [[겐리흐 야고다]]의 극동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부르주아' 세력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중앙시베리아 공화국을 공격하며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은 두 국가 모두의 국력을 바닥냈다. 약해진 중앙시베리아 공화국은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5.2|칸스크의 아나키스트 봉기]]로 숨통이 끊어졌다. 혼란의 와중에 공군 원수 포크리쉬킨은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5.1|노보시비르스크]]에 기업 국가를 세웠고 육군 장군 안드레예프는 과대망상적인 정책을 내세우며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5.6|크라스노야르스크]]로 탈주했다. 끝까지 공화국 편을 들었던 크릴로프 장군은 이 소식을 듣고 미쳐버려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5.4|케메로보]]를 점거하고 자신을 러시아의 왕이라 주장했다. 공화국의 잔당은 톰스크에 모여 희망을 잃지 않고 이상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어가려 했다. 몽골, 투바와의 접경지대에는 바실렙스키 원수의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5.5|옛 소련군의 일부]]가 병력을 온존한 채 몸을 웅크리고 있다. 일본은 만주국에 존재하는 백군 잔당을 통해 극동을 공격했다. 일본은 점령지에 괴뢰정부를 세웠지만 그 괴뢰정부 역시 노선 차이로 백군 잔당들과 미하일 로마노프의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6.2|차르주의자]]들과 교권 파시즘을 신봉하는 골수 파시스트였던 [[콘스탄틴 로자예프스키|로자옙스키]]의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6.4|급진 파시스트]], 실용주의적 파시스트인 마트콥스키의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6.5|온건 파시스트]]로 3분할 되었다. 겐리흐 야고다와 NKVD는 몰락 이후에도 공포 정치를 계속했고 이에 젊은 장교인 [[발레리 사블린]]이 인민들을 이끌고 봉기하며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구 소련#s-6.3|부랴트 반란]] 전쟁이 개시되었다. 이렇게 러시아는 수많은 세력으로 찢어져버렸고, 남은 것은 한 줌 남은 소련 시대의 불가사의들과 동족상잔에 개의치 않는 약탈자들, 그리고 루프트바페의 주기적인 폭격 테러였다. 광활한 러시아 땅은 이제 국가로써의 기능조차 못 할 군벌들이 지배하는 땅으로 거듭나 통일을 이루게 해줄 자들만을 기다리는 잊혀진 땅이 되었다. 그러나 승자였던 독일도 얻은 것은 없었다. 서러시아 전쟁을 통해서 그나마 유지되던 유럽의 동맹국들은 경제난과 서로 간의 입장 차이로 인해 불가리아를 제외하곤 거의 대다수가 찢겨나갔다. 루마니아와 슬로바키아는 독일의 혼란을 이용해서 공동의 적 헝가리에 대한 고토수복 명목으로 침공을 감행했고, 독일의 적절치 못한 대응으로 인해 최종적으로는 루마니아와 헝가리 모두 팍트에서 탈퇴했다. 나치 독일이 점차 붕괴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하인리히 힘러]]는 [[나치즘|국가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여 자신만의 급진적 이데올로기를 실현시키기로 결심한다. 마침 서러시아 전쟁이 발발해 병력 공백이 발생하자 [[무장친위대]] 병력을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으나 발각된다. 히틀러는 게르마니아를 수비하던 [[한스 슈파이델]] 장군의 공로로 힘러를 체포하긴 했지만 힘러를 처형하는 순간 독일이 내전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부르군트 SS국]]을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을 허용해 힘러를 사실상 내쫒는다. 부르군트는 명목상으로는 독일이 창설한 아인하이츠팍트에 조인된 괴뢰국이나 실제 힘러가 무엇을 꾸미는지는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 막대한 계획의 실패와 서러시아 전쟁으로 타격을 입어 몰락해가는 독일 경제를 살리기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알베르트 슈페어]]의 제안에 따라 '''[[노예제]]'''가 공식적으로 도입되었다. 수 많은 '운터멘쉬'들이 그대로 독일 공장들에서 노예로 사용될 동안 독일인들은 일을 하지 않았다. 독일의 재벌들은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도 노예들을 통해 공장들을 가동할 수 있어서 큰 이득을 보았고 독일 경제의 붕괴를 막는데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노예들에 의해 운용되는 산업은 그 한계를 발휘할 수 밖에 없었고 노예들이 생산하는 상품들은 저품질에 불량이 속출하고 말았다. 그리고 독일 내에서 노예제로 인해 수혜를 입은 것은 거대한 재벌 집단 밖에 없었고 나머지 독일 국민들의 삶은 윤택해지지도 않았다. 그 결과 독일 경제는 후발주자였던 일본에게도 따라잡히면서 전세계적인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편 패전국 미국은 급격한 정치지형 변동을 겪게 되었다. 공화당은 패전의 책임으로 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하고, 특히 듀이가 속한 당내 온건파는 완전히 멸망했다. 민주당은 전쟁영웅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영입하며 승승장구했지만 좌파는 [[헨리 A. 월리스]]의 진보당으로, 남부 민주당류 우파는 [[조지 S. 패튼]]의 국민당으로 갈라져나갔다. 아이젠하워의 임기가 끝난 1956년은 그런 혼란의 절정기였는데 민주당의 에스테스 케포버가 승리하기는 했으나 4정당이 모두 선거인단을 얻으며 미국의 전통적 양당제가 완전히 무너졌음이 드러났다. 복잡해지는 정치적 셈법 끝에 공화당은 당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결정으로 옛 적수인 민주당에 접근했고 공동 선거연합인 공화민주연합(Republican Democratioc Coalition,RDC)을 결성하게 된다. 이에 공화민주연합의 등장에 위기감을 느낀 다른 세력들은 하나로 결집했고 반 공화민주연합을 위한 공동 선거연합 국민진보동맹(National Progressive Pact, NPP)을 결성한다. 공화민주연합과 국민진보동맹은 [[빅 텐트|새로운 양당제]]를 형성한다. 일본 내 정치 지형도 큰 변화를 겪었다. [[도조 히데키]]는 지나치게 강경한 입장으로 전쟁 도중에 교체되었고 [[스즈키 간타로]]가 총리대신이 되어 아카기 조약을 체결하고 충칭을 점령하며 전쟁을 완전히 끝냈다. 그러나 간타로는 애초에 평화협정만을 위한 징검다리 총리였고 역할을 다하자 [[대정익찬회]]를 장악한 [[기시 노부스케]]가 총리가 되었다. 기시는 [[국가자본주의]] 정책을 통한 경제 성장이나 일본군 참전용사에 대한 보상금 지급, 제2 의 만주국 프로젝트인 광동의 건설 등 전후 정책을 펼쳤지만 가장 시급한 문제였던 군 예산 현실화는 실패해 실각하고 본인의 계파는 산산조각났다. 군 예산 문제는 두고두고 일본 정계의 발목을 잡았고 황실과 중신들이 개입해 비 익찬회계 총리 둘(1949년의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 1954년의 [[하토야마 이치로]])을 투입하고 나서야 어느정도 제어가 되었다. 이후로는 국내, 국외 문제와 선거 결과, 익찬회 내부 정파 변동 등 큰 사건이 생길 때마다 총리가 교체되면서 길어야 3년을 가는 단명 총리들만 주르륵 집권하는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그나마 경제만은 식민지에서 나오는 무한에 가까운 자원과 경쟁자 없는 시장을 등에 업은 [[재벌/일본|자이바쓰]]들이 미친듯이 몸을 불리며 전후의 고속 성장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런 발전에서 소외된 농촌지대는 비참한 상황이 유지되었고 1959년 참다못한 농민들은 대규모의 쟁의를 일으켰다. 정부는 [[고등경찰과 특별고등경찰|특고]]와 [[일본 제국 경찰|경찰]]을 동원해 발포하는 것으로 쟁의를 강제로 진압했지만 결국 총리대신 아리타 하치로는 사퇴해야 했고 대정익찬회 내부 파벌간의 타협의 결과로 1960년에는 [[내무성|내무대신]] [[https://ja.m.wikipedia.org/wiki/船田中|후나다 나카]]가 총리직에 올랐다. 대일본제국은 분명히 찬란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비대해진 대정익찬회, 자이바쓰, 일본군 등이 계파갈등으로 이전투구하며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부패와 관료제라는 몸속의 암덩어리는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1961년, 공화민주연합 내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국민진보동맹 내 진보당 후보 [[https://en.wikipedia.org/wiki/Henry_M._Jackson|헨리 M. 잭슨]]을 압도적으로 꺾으며 새로운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미국의 내부에는 100년 넘는 시간동안 개선되지 않는 인종차별의 현실에 분개한 흑인을 비롯한 여러 비백인 인종들은 민권운동을 전개하며 민권법을 요구한다. 닉슨은 미국은 고립주의가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이슬란드, 서인도 제도, 아이티를 묶은 자유국가기구(OFN)라는 군사동맹기구를 수립해 두 적대국과의 경쟁에 돌입하고, 향후 일본과의 2차 전쟁을 대비해 군대를 재건하며 동시에 독일을 견제할 새로운 동맹국을 찾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세 강대국 미국, 독일, 일본이 모두 핵 보유국이 되며 본격적인 냉전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구 소련 지방은 국가판무관부가 지배하는 지역을 빼면 수 없이 많은 군벌들이 지배하는 황무지로 변했고, 독일은 다 죽어가는 [[아돌프 히틀러]]의 상징성 하나로만 겨우 유지가 되고 있다. 본래였다면 히틀러의 뒤를 이은 새로운 총통으로 부임했어야했던 괴벨스가 모스코비엔 국가판무관부를 시찰하던 중 테러를 당해 사망해버렸고[* 전에는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에게 피격당해 사망함.], 이로 인해 제3제국의 지배를 유지할 새로운 총통의 행방은 혼란에 빠졌다. 괴링, 슈페어, 보어만 등 나치당 내 유력자들은 히틀러의 후계자 자리를 노리며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가고 있고, 힘러는 자신의 그림자 국가 부르군트에 웅크려 자신의 망상을 이뤄줄 체제를 형성하면서 동시에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등 독일 내 친위대를 이용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일본은 독일보다는 나아서 경제적 발전으로 실패상을 숨기고는 있지만 결국 폭탄이 터지기까지는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전쟁의 패배로 만신창이가 되었던 미국은 적국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모습들을 보며 다시 깨어나 민주주의의 조병창으로서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옛 추축국들이 무너져가는 상황 속에서 그와는 반대로 패전의 멍에에서 회복되어가는 미국을 바라보던 일본은 하와이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해 미국을 견제하고자 한다. 대정익찬회 보수파들은 군개혁 및 예산 합리화도 저지할 겸 1961년에 '하와이 방위 계획 조례'를 채택하고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하와이에 배치하고자 했다. 그러나 CIA는 [[U-2]] 정찰기를 통해 건설 중인 미사일 기지를 발각해냈고 [[쿠바 미사일 위기|하와이 미사일 위기]]가 발발한다.[*스포일러 제작진에 따르면 하와이에 배치된 일본의 중거리 탄도미사일들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를 지니지 않는다고 한다.] 미-일간의 전쟁 위협이 고조되며 전 세계가 [[핵전쟁]]의 공포에 두려워 떠는 와중에 1962년의 새해는 다가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